최일남의 중편소설 '흐르는 북'은 방랑 예술가였던 민노인과 그의 아들 민대찬, 그리고 손자 성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족 간 갈등과 화해의 서사를 통해, 1980년대 중산층 사회의 가치관 변화와 세대 간 단절 및 융합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흐르는 북'의 줄거리, 인물 분석, 주제 해석, 상징 의미, 그리고 당시 사회적 맥락을 종합하여 작품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한다. 해학적 문체와 풍자, 역설이 어우러진 이 소설은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한 시대의 정신사적 흐름과 예술혼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며, 흐르는 북이라는 상징을 통해 세대 간의 화해 가능성과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물 구조 가족 이야기
최일남의 '흐르는 북'은 1986년 문학사상에 발표된 중편소설로, 1980년대 도시 중산층을 배경으로 한 가족사적 서사다. 이 작품은 사실주의적인 전개 속에서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북을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가족 구성원들의 내면을 조명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해 독자는 민노인이라는 노인을 중심으로, 그의 아들 민대찬, 며느리 송여사, 손자 성규 등 가족 구성원 각각의 삶과 심리, 갈등을 파악할 수 있다. 민노인은 젊은 시절 예술혼을 좇아 방랑하며 북을 치는 삶을 살았고, 이로 인해 가족을 소홀히 했다. 현재는 아들 민대찬의 집에 얹혀살며 조용히 지내지만, 아들은 과거의 상처로 인해 민노인의 존재 자체를 불편해한다. 반면, 대학생인 손자 성규는 북 치는 할아버지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탈춤 동아리 공연에 민노인을 초청한다. 민노인은 오랜만에 예술혼을 불태우고 감동을 느끼지만, 그 일은 다시금 가족 내 갈등을 부추긴다. 이후 성규가 데모 도중 경찰에 체포되자, 아들 부부는 민노인을 원망한다. 하지만 민노인은 북을 껴안으며 성규와 자신의 삶이 닮았다는 생각에 잠긴다. 이 장면은 과거와 현재, 예술과 현실, 단절과 화해가 공존하는 지점을 상징하며, 제목인 흐르는 북처럼 세대 간 갈등이 단절이 아닌 흐름과 융합 속에서 극복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흐르는 북과 예술혼의 본질적 의미
'흐르는 북'의 핵심 주제는 세대 간 갈등과 화해의 모색이며, 이를 표현하는 상징이 바로 북이다. 북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민노인의 삶의 방식이자 정체성이며 동시에 가족 해체의 원인이다. 민노인은 예술혼을 좇아 방랑했고, 이로 인해 가족과는 멀어졌다. 아들 민대찬은 가난과 수치심 속에서 자라며 아버지를 부정하게 되었고, 현재는 중산층으로서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는 인물로 성장했다. 그러나 민대찬의 아들 성규는 이러한 갈등 구조를 이해하고 넘어서는 인물이다. 그는 할아버지의 북을 단절의 상징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으로 바라본다. 성규의 눈에는 예술적 진정성과 자유로움이 살아 있는 북이, 오히려 현재의 억압적인 사회 질서와 맞서 싸우는 상징으로 보인다. 성규가 민노인을 탈춤 공연에 초대하고, 함께 무대를 완성하는 과정은 바로 예술과 세대 간 화합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장면이다.또한 작품 후반, 성규가 데모에 참여하다가 연행되는 장면은 데모와 북이 본질적으로 같은 흐름을 가진다는 점을 암시한다. 즉, 제도와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 존재를 표현하려는 움직임이며, 그 점에서 민노인의 역마살과 성규의 데모는 닮아있다. 이는 자유와 표현, 저항의 계보가 세대를 초월해 이어질 수 있음을 상징한다.
인물 간 갈등 구조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 간의 불화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시대적 흐름 속에서 파생된 가치관의 충돌을 보여준다. 민노인, 민대찬, 성규는 각각 한국 사회의 세 가지 다른 세대를 대표한다. 민노인은 전통 예술과 자유로운 방랑을 상징하며, 그의 북은 공동체적 예술과 개인적 열망의 잔재다. 민대찬은 산업화의 수혜를 받은 중산층 세대이며, 명예와 체면, 사회적 성공을 중시한다. 반면, 성규는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성장한 젊은 세대로, 기존 질서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상주의자의 모습을 보인다. 작품의 갈등은 결국 민노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민대찬과, 그런 아버지를 설득하려는 성규의 대립으로 구체화된다. 성규는 할아버지의 삶을 단절해야 할 과거가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문화적 자산으로 여긴다. 이러한 입장은 단순한 개인 간 충돌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발전과정 속에서 소외된 예술, 노동, 공동체 가치에 대한 재조명으로 읽힌다.
특히 흐르는 북이라는 제목은 갈등과 단절이 아닌, 흐름과 연결, 융합의 가능성을 말해준다. 북은 한때 민노인의 삶을 파괴했던 도구였지만, 성규에게는 새로운 연대의 매개체가 된다. 이는 세대 간 단절은 고통과 공감 속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또한, 북의 울림은 역사와 삶, 예술의 본질이 끊기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임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