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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국 소설 '우상의 눈물' 해석 : 공간적 배경(학교), 이중구조, 인간 통찰

by shhappyday 2025. 5. 27.

소설 우상의 눈물 관련 이미지

고등학교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구성원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드러낸다. 이 글은 전상국의 작품을 기반으로 하여 학급 내 자율과 통제를 둘러싼 갈등, 겉과 속이 다른 인간 심리의 작동 방식, 그리고 정당성을 둘러싼 리더십의 본질에 대해 조명한다. 특히 외형상 모범적이지만 실은 기만적인 리더와,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솔직한 학생 사이의 대비를 통해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는 조직 내 위계와 판단의 문제를 되짚어본다. 독자는 이 글을 통해 학교라는 축소 사회 안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갈등과 그로 인한 인간 행동의 이면을 이해하고, 그것이 오늘날 사회 속 다양한 인간관계에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드러나는 인간 심리의 이중성

학교는 단순히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넘어, 사회적 상호작용과 인간 군상이 농축된 일종의 축소 사회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중요한 시점에서, 새로운 학급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질서의 재정립을 요구받는다. 이 과정에서 인간 내면의 복합적인 감정과 심리가 표출된다. 작품에서 ‘나’로 등장하는 이유대는 처음에 임시 반장을 맡게 되며, 그로 인해 학급 내 질서에 개입하게 된다. 하지만 반장의 자리는 단순한 책임감을 넘어 학급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다수는 조용히 학교생활을 이어가려는 평범한 이들이다. 그러나 일부는 과거 유급을 경험한 집단으로, 기존 규범과 다소 거리를 둔 태도를 보인다. 이들 중 중심인물인 ‘기표’는 주변 학생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일종의 무언의 권위를 구축해 간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행동이 항상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학급 내부에서는 명확한 도덕적 기준이 흐려져 있으며, 겉보기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사는 이처럼 복잡한 학급 분위기를 안정시키기 위해 나름의 전략을 구사한다. 그 대표적인 방식이 학생 개개인의 내면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태도와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다. 형우를 반장으로 내세우고, 기표를 교묘하게 고립시키려는 시도는 교육의 이상적 목표보다는 체계 유지를 위한 기술적 접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곧 심리적 압박이 되어, 구성원들에게는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통제와 감시가 작동함을 실감하게 만든다. 작품 속 인물들의 심리 변화 또한 주목할 부분이다. 특히 형우는 처음에는 진정성 있는 리더로 보이지만, 점차 그의 말과 행동 속에서 의도적인 이미지 관리와 권력욕이 드러난다. 반면, 기표는 무뚝뚝하고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내면의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이러한 대비는 독자에게 인간 심리의 이면을 다시 보게 만들며, 정당성과 진정성의 본질을 되묻게 한다.

 

표면적 자율과 통제, 리더십의 이중 구조

고등학교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자율’이라는 개념은 종종 표면적으로만 존재한다. 실제로는 담임 교사의 권위가 학급 운영 전반에 스며들어 있으며, 학생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규율 속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이 소설에서는 담임 교사가 표방하는 자율적 학급 운영이 실은 치밀하게 계산된 통제임을 암시한다. 담임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주는 척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여러 전략을 동원한다. 예를 들어, 기표를 학급에서 고립시키는 전략은 단순한 문제 학생 퇴치가 아닌, 전체 질서 유지를 위한 조작된 방식이다. 담임은 모범생들에게 기표의 시험을 돕게 하면서도, 그 결과로 기표가 심리적 위축을 겪게 되는 상황을 유도한다. 이러한 방식은 겉으로는 학생의 복지를 위한 배려처럼 보이나, 실은 권력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상징적 행위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형우는 담임과 협력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형우는 반장으로서 학생들 사이에서 신뢰를 얻고 있으며, 스스로도 그 역할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의 행동에는 점점 더 계산된 언행이 나타난다. 그는 기표에 대한 동정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그를 학급 내에서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실행한다. 그의 리더십은 표면적으로는 헌신과 우정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철저히 이성과 논리에 따른 계획이다. 학생 사회는 어른들이 만든 틀을 그대로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 형우와 담임의 관계, 형우와 기표의 대립은 성인 사회에서의 정치적 협상과 권력 투쟁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특히 형우의 ‘말’은 중요한 상징적 도구가 된다. 그는 부드러운 언어로 설득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나, 그 이면에는 타인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로 인해 기표는 점점 더 위축되고, 결국 자리를 떠나게 된다. 이런 상황은 독자로 하여금 ‘진정한 자율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한다. 자율이란 이름 아래 운영되는 구조 속에서도 결국 누군가는 권력을 쥐고 있으며, 나머지는 그 권력에 영향을 받는다. 진정한 자율이 성립하려면 외형적 자유뿐 아니라, 내면적 신뢰와 존중이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작품은 그 점에서 부재한 현실을 냉철하게 드러낸다.

 

겉과 속이 다른 인간관계와 그에 대한 통찰

작품의 진정한 묘미는 인간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과 상호작용을 탁월하게 드러낸 데 있다. 특히 ‘형우’와 ‘기표’, 그리고 ‘담임’ 사이의 삼각관계는 교묘하게 얽힌 심리적 역학을 보여준다. 외형적으로는 질서 있는 학급, 화합과 우정을 기반으로 한 학생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계산된 감정의 유희가 작동하고 있다. 형우는 기표의 심리를 파고들면서 마치 동정을 베푸는 듯한 자세를 취하지만, 그의 행동은 결국 기표를 더 큰 외로움과 부담 속으로 몰아넣는다. 기표는 점차 자신이 도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자신이 ‘누군가의 계획 속에서 기능하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압박은 결과적으로 기표를 소외시킨다. 그는 스스로 학급을 떠나고, 그로 인해 형우는 도리어 의로운 인물로 각인된다. 이는 겉과 속이 다른 인간관계의 전형적인 예시다. 담임 역시 이러한 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한다. 그는 ‘위문품’과 ‘후원’을 기표에게 전달하면서 사회적 시선을 끌어들이고, 그것이 자신의 지도력 덕분이라는 인상을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교육적 목적이 아닌 개인적 성취를 위한 계산이 숨어 있다. 기표의 이야기가 영화화될 예정이라는 설정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교육자는 조력자가 아닌 기획자가 되었고, 학생은 교육의 주체가 아닌 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아닌, 그 이면의 진정성이다. 누군가를 돕는 척하지만 실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행동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 형우와 담임이 보여주는 ‘계산된 선의’는 기표의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그를 더욱 고립시킨다. 반면, 이유대라는 인물은 이러한 위선적 구조를 꿰뚫어보며 비판적 시선을 유지한다. 그는 나서서 누구를 평가하지도 않지만, 상황을 관찰하고 본질을 통찰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의 존재는 이 작품이 단순한 학교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인간관계의 깊은 내면까지 성찰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