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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소설 '고향' 분석 : 1920년대 농촌, 갈등 구조, 연대와 계

by shhappyday 2025. 5. 27.

이기영 소설 고향 관련 이미지

이기영의 장편 소설 『고향』은 1920년대 말 일제강점기 조선 농촌을 무대로, 소작농의 고단한 삶과 점차 성장하는 계몽 의식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대표적인 농민 소설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개인의 고난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구조 속 계층 간 갈등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며 민중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높인다. 김희준, 안승학, 안갑숙 등 중심인물들의 내적 갈등과 관계의 전개는 당시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그대로 반영하며,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집단적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계몽 활동과 소작 쟁의, 노동 쟁의를 중심으로 공동체적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변화를 추구한다. 소설 『고향』을 통해 우리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농촌이 겪은 어려움과 그 속에서 피어난 사회의식의 성장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1920년대  농촌의 시대적 배경

이기영의 장편 소설 『고향』은 일제강점기 말기, 특히 1920년대 조선 농촌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기는 조선총독부가 자본주의적 토지 소유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시행한 토지 조사 사업과 산미 증산 계획 등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이를 통해 조선 사회는 급격한 계층 재편을 겪었으며, 자작농과 소지주는 몰락하고 대다수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다. 『고향』은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농민들이 겪는 경제적 곤궁과 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작품 속 원터 마을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이 마을은 지주가 존재하지 않고 마름 안승학이 실질적으로 모든 토지를 관리하고 있는 구조다. 그는 고리대금과 높은 소작료, 그리고 지주와의 유착을 통해 농민들을 착취한다. 이러한 모습은 1920년대 후반 농촌 사회에 만연했던 착취 구조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더불어, 곡물 가격은 하락하고 생산량은 오히려 늘어나 농민들은 수확의 대부분을 소작료와 빚 갚는 데 사용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이러한 현실은 등장인물 원출과 그의 아들 인동, 그리고 마을 농민들의 생활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이 소설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당시 농촌의 어려움을 묘사한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의식을 성장시키고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지를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희준이라는 인물은 중산층 이상의 배경에서 출발하지만, 유학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민과 함께 생활하고 계몽 활동에 힘쓴다. 이는 단순한 귀향이 아니라 ‘농민과 함께 하는 삶’을 실천하려는 의식적 선택이며, 계몽주의 지식인이 당대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사회적 책임감을 반영한다. 이처럼 『고향』은 단순한 향수나 회고의 의미에서 고향을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고향은 변화의 출발점이며, 새로운 사회적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해석된다. 당시 농촌은 생존을 위해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노동력의 유출이 심화되었고, 소설 속 갑숙과 인순, 경호 등의 캐릭터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공장 노동자가 되어 새로운 사회 현실을 경험하고, 일부는 노동 운동에 참여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계급 의식을 형성해 간다. 특히 갑숙은 아버지 안승학이라는 권위적 구조에 맞서고, 공장에서의 파업을 통해 실질적 저항의 주체로 변모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시대가 요구하는 집단적 각성과 연대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다.

 

등장인물을 통한 계층 간 갈등 구조와 사회적 의미

『고향』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당대 사회의 계층 구조와 갈등을 세밀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개인 간의 갈등이나 가족사에 그치지 않고, 각 인물을 사회적 계급 안에 위치시키며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단편적 인물 묘사를 넘어서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된다. 대표적 인물 김희준은 본래 객주 집안의 아들로 비교적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지만, 유학 생활 중 집안이 몰락하면서 귀향하게 된다. 그는 단순히 좌절하거나 자기 삶을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농민과 함께 소작농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계몽 활동과 조직 활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선택은 지식인 계층의 사회적 책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당시 문학 속 지식인 유형 중 가장 긍정적 모델로 평가받는다. 그는 소작 쟁의를 주도하고, 나아가 도시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시도하며 집단적 힘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한편, 안승학은 마름이라는 위치에서 지주와 농민 사이에서 실질적으로 농촌을 지배하는 인물이다. 그는 가난한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의 권력을 손에 넣었으며,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선택으로 농민을 철저히 수탈한다. 그의 행동은 단순한 악인으로서가 아니라, 당대 사회 구조가 낳은 산물로 이해된다. 안승학은 마을 농민들의 저항에 대해 폭력적인 방법보다는 기만과 협상을 통한 통제를 시도하며, 권위와 위선을 동시에 보여준다. 안갑숙은 그의 딸이자 도시로 떠나 ‘옥희’라는 이름으로 노동자가 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초기에는 부정적인 아버지에 대해 분노하거나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모습이지만, 점차 노동운동의 지도자로 성장해 간다. 특히 그녀는 여성으로서, 또 피착취자의 자녀로서 두 가지 사회적 억압을 동시에 겪으며 성장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변화는 단순한 개인적 성장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동반한 주체적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인물 원출과 인동은 소작농의 전형적인 삶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들은 부지런히 농사를 짓지만 늘 부족하고, 생활은 궁핍하다. 특히 인동은 마을 처녀 방개를 좋아하면서도 음전이와 결혼해 갈등을 겪는 등 사적인 문제를 통해 농민의 일상적 고단함과 감정적 불안정까지도 잘 묘사되고 있다. 권경호는 권상필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곽첨지의 아들로, 신분상의 진실이 드러나며 혼란을 겪는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혈통과 계급이 어떻게 운명을 좌우하는지를 반영하는 구조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처럼 『고향』의 인물들은 단지 이야기 전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각각의 사회적 위치와 갈등을 통해 당대의 계층 구조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인물 간의 대립은 단지 감정의 충돌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 역할의 충돌이며, 이는 곧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사회 비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각 인물의 선택은 단순한 개인의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당시 구조적 현실 속에서 가능했던 유일한 길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농민 계몽과 연대를 중심으로 본 고향의 문학적 의의

『고향』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계몽과 연대를 통한 공동체의 변화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있다. 김희준을 중심으로 한 야학 활동, 소작 쟁의, 그리고 도시 노동자와의 연대는 단순한 사건 전개를 넘어 당시 농민들이 새로운 사회적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그린다. 이는 곧 계급의식의 성장과 집단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서사 구조로, 이기영의 문학 세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 중 하나로 평가된다. 작품 속 계몽 활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처지를 자각하게 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하게 하는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낸다. 희준이 주도한 야학은 문자 교육에 그치지 않고 현실 문제를 토론하며 공동체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장으로 발전한다. 이는 근대적 민중 교육의 초기 모습으로, 당시 계몽주의적 접근의 현실 적용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소작 쟁의는 단순한 권리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농민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기존 권력 구조에 맞서 싸우는 실천의 장으로 기능한다. 희준은 이를 이끄는 지도자 역할을 하며, 농민들 사이에 연대의식을 고취시킨다. 이 과정에서 갑숙과의 협력은 도시 노동자와 농촌 농민 간의 계급 연대 가능성을 제시하며, 노동 문제와 농민 문제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이 연대는 실제 결과로도 이어져 마름 안승학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고향』이 갖는 문학적 의의는 바로 이러한 계몽과 연대를 중심으로 한 집단적 성장 서사에 있다. 당시 카프 문학이 흔히 갖던 계급 대립의 단선적 구도를 넘어서, 이기영은 보다 복합적이고 구체적인 인물과 사건을 통해 계급 간 대립의 현실성과 해결 가능성을 함께 그려냈다. 이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실제적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하려는 태도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고향』은 단순한 사실주의 소설로 그치지 않고, 당시 조선 농촌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통해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현실 극복을 위한 계몽과 연대를 적극적으로 묘사한 문학적 성취물로 자리 잡았다. 현대 독자에게도 이 작품은 공동체의 변화 가능성과 개인의 책임, 그리고 사회 구조 속에서의 집단적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