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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길 소설 '제3인간형' 속 무기력한 지식인, 검은 넥타이, 제3인간형

by shhappyday 2025. 6. 7.

안수길 제3 인간형 관련 이미지

안수길의 단편소설 제3인간형은 비극적 역사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잃은 세 인물을 통해 개인에게 어떤 정신적 변화를 야기하는지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줄거리가 복잡하거나 극적인 사건으로 전개되기보다는, 내면의식을 중심으로 한 정적인 흐름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특히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겪는 주인공 석을 중심으로, 전쟁이 낳은 인간형 세 가지를 제시하며 시대의 고민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지식인의 무기력한 초상

작품의 서두에서 주인공 석은 토요일 오후 아이들이 떠난 학교에 혼자 남아 바다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바다의 풍경은 정지된 화면처럼 묘사되며, 이는 곧 석의 무기력하고 공허한 내면과 맞닿아 있다. 석은 부산으로 내려와 교편을 잡고 있으나,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희미해지고 가장으로서의 생계유지에 쫓기며 살아간다. 그는 과거의 문학적 열정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지 못한 채, 피로와 좌절 속에 일상을 이어간다. 석은 조운과 미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조운은 과거 고고한 문학의식을 지닌 인물이었고, 미이는 문학소녀로 조운을 따라다니며 순수함을 간직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들에게 변화를 강요했고, 석은 이 변화에 있어 가장 모호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조운이 타락을 자각하고, 미이가 새로운 신념으로 나아가는데 반해, 석은 어느 쪽도 택하지 못한 채 공허함에 젖어 사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석의 모습에 제3인간형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이 시대 지식인의 혼란과 자기 상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검은 넥타이의 의미

오랜만에 석을 찾아온 조운은 과거 문학적 신념을 지녔던 친구였다. 그는 한때 검은 넥타이를 매며 인생의 상장을 자처할 정도로, 순수하고 이상적인 문학을 추구했지만, 이후 생존을 위해 사업에 뛰어들며 변화를 겪는다. 그는 이제 번듯한 사업가로 살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문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도덕적 자의식을 상실해버린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조운이 석에게 전해주는 미이의 편지는 이 작품의 중심을 관통하는 매개체다. 미이는 과거 조운에게 검정 넥타이의 무거움을 지적하며, 새 넥타이를 선물하고 인생을 밝게 살아가라고 권유한 인물이다. 그녀는 전쟁으로 집안이 몰락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삶을 비관하지 않으며, 오히려 간호장교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강한 여성으로 성장한다. 미이의 결단은 조운과 석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며, 특히 조운은 자신이 미이보다 훨씬 초라해졌음을 자각한다. 이처럼 『제3인간형』은 시대적 격랑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며, 동일한 현실 앞에서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는 인간 군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그중에서도 석은 유일하게 어떤 방향성도 갖지 못한 채 방황하는 존재로, 작품 전체의 주제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다. 검은 넥타이라는 상징적인 소재를 통해 순수한 삶에 대한 지향을 드러내고 있다.

제3인간형이라는 정체성

석은 자신을 제3인간형이라 규정한다. 이는 조운처럼 현실에 편승해 생계를 택한 것도, 미이처럼 신념을 가지고 사회에 뛰어든 것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인간형을 말한다. 그는 과거의 문학적 열정과 현재의 가족 부양 사이에서 어느 쪽도 확실히 선택하지 못한 채, 나날의 생계와 피로 속에 자신을 잃어버린다. 작품 후반부에서 조운의 고백과 미이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석은 큰 감정적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자신의 무력감과 소극적 태도를 자각하게 되며, 자신 또한 시대가 만들어낸 한 유형 임을 깨닫는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인물들보다도, 그저 현실에 떠밀려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고뇌를 더 비극적으로 묘사한다. 제3인간형은 단순히 무기력한 인물이 아니라, 방향을 잃고 시대에 휩쓸린 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또 다른 얼굴일 수 있다. 석이 느끼는 자기혐오와 상실감은 아픈 역사 속에서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 작가는 3유형은 인물을 통해 바람직한 삶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