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1] 전국연합학력평가
[21~2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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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노인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더욱 심한 손해를 보았다. <원지본위>란 환지* 원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송 노인의 경우는 도합 천오백열 평 중 원지로 받은 것은 불과 사백 평 뿐이고 나머지 천백열 평은 말도 안 되는 박토──산을 깎은 개간지를 환지로서 받았던 것이다.
㉠“죽일 놈들!”
송 노인의 입에서는 또 이런 말이 나왔다. 환지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불평을 했다. 마을 환지위원들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말이 떠돌았다. 진흥공사의 ××사업소 사람들도 그러고 그랬으리란 소문도 나돌았다. 이런 소문들이 맹탕 거짓말이 아니란 것은, 가령 마을 환지위원들 가운데는 그런 억울한 변을 당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과 또 환지위원들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덕을 본 셈이라는 얘기들을 미루어서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부당한 환지를 받은 사람은 모두 같은 기분들이었지만 그런 뜻을 모아서 어떻게 해 보자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오리엔탈 골프장>의 경우와는 달라서 이건 바로 정부에서 한 일이니까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눈치들이었다. 말하자면 다루기 쉬운 백성들로 잘 훈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망했다, 망했어!”
송 노인의 불평은 한 계단 더 비약했다. 그는 자기에게 내려진 부당한 처사를 참을 수가 없었다. 늙은 몸으로 두 달을 계속 관계요로에 <부당 환지의 시정>을 호소하고 다녔다. 새어 나온 그의 유서 내용에 의하면 마을 환지위원장인 이성복 동장에게는 무려 15회, 농업진흥공사 ××사업소에는 6회나 찾아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모두가 허사였다. 시종일관 묵살을 당하고만 셈이니까.
게다가 고속도로가 통하면 사람 왕래도 많아져서 송 노인의 집에서는 가게도 차릴 수 있을 것이란 메기입 이성복 동장의 말도 턱도 아닌 헛나발이 되고 말았다. 고속도로를 다니는 차들은 아무데나 설 수도 없고 또 고속도로는 함부로 건너갈 수도 없다는 것을 시골 사람들은 길이 통한 뒤에야 비로소 알았다. 바로 길 너멋 논에 두엄을 내는 사람들도 먼 굴다리 쪽을 일부러 돌아야만 되었다.
“제-기, 이기 무슨 지랄고!”
짐이 무거울수록 그들의 입에서는 욕이 절로 나왔다.
길에서 집이 가까운 송 노인의 경우는 은근히 희망을 걸어보던 가게를 내긴커녕 지나가는 차들이 내뿜는 매연과 소음과 먼지 때문에 도리어 역정만 늘어날 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행여 구멍가게라도 될까싶어 일부러 길 쪽으로 내 보았던 마루방도 이내 문을 닫아걸었다. 길 쪽 창유리가 쉴 새 없이 밀어닥치는 먼지로 인해 마치 매가릿간의 그것처럼 뿌옇게 되어 버렸다.
㉡“망했다. 망했어!”
[중략 부분의 줄거리〕마을의 농토는 공장부지 조성 등의 명목으로 자본가들에게 넘어간다.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가벼운 농담이나 하는 마을 젊은이들과 송 노인은 갈등하게 된다.
“비꼬지 마이소.”
이번에는 메기입의 친구요 역시 마을 환지위원의 한 사람인 상출이란 청년이 불쑥 나섰다.
“영감님이 젊었을 때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했다고 툭하면 젊었을 때는──하고 나서는기요? 농민조합에 들어가서 경찰서 때리부수는 일에 가담했다는 것밖에 더 있소?”
청년회장까지 겸하고 있는 만큼 비교적 머리가 영리하고 옛날 일도 제법 알고 있는 편이다. 안다는 놈이 그러니 송 영감은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농민조합에 가담한 기 그렇게 나뿐 일인가?”
“농민조합은 빨갱이 단체 아니오?”
상출이는 숫제 위협 비슷하게 나왔다. 송 노인은 드디어 부아통이 터지고 말았다.
“머 빨갱이 단체? 이놈들이 몬하는 말이 없구나. 그래 왜놈의 경찰이 우리 경찰이더냐? 일제 때 고자질이나 하고 헌병 앞잽이나 돼서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을 괴롭히고 쏘아 죽이고 하던 놈들이 요새 와서는 자긴 반공 투쟁을 했을 뿐이라고 도리어 큰소릴 치고 돌아다닌다 카디이, ㉢바로 느그가 생사람 잡을 소릴 하는구나. 어데 그 소리 한 번 더 해 봐라!”
송 노인은 뼈만 남은 팔을 걷어 올렸다. 금방 칼이나 창 구실을 할는지도 모를 그런 팔이었다.
“영감님 참으이소. 장난으로 한 소리 아잉기요.”
송 노인의 성깔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메기입이 얼른 사이에 들었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아나, 이놈아 어서 파출소에 가서 신고나 해라! 송기호는 늙은 빨갱이라고── .”
송 노인은 상출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아 주려다 그대로 돌아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송 노인의 그러한 감정은 비단 상출이에게만이 아니라 아무런 주견도 패기도 없으면서 그래도 마을의 무슨 대표인 체하고 우쭐거리는 젊은 치 전체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청년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세대교체의 탓인지도 모르되 옛날과 달라서 요즘은 어느 마을 할 것 없이 어른들은 다 뒤로 물러앉고 그런 젊은 치들이 마을 일을 도맡듯 해서 옳든 그르든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용춤을 추고 있는 판국이라고 송 노인은 생각했다. 환지문제 기타로 인해 송 노인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지만 노인네들은 그저 “세상이 그런 걸 머!” 할 뿐 드러내 놓고 말을 잘 안했다.── 요컨대 아직은 드러내 놓고 말은 하지 않더라도 마을사람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틈이 생기고 있는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멍청한 얼굴들에 나타나게 마련인 씁쓸한 웃음들만 보아도 능히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철딱서니 없는 놈들…….’
- 김정한,「어떤 유서」-
*환지 : 토지를 서로 바꿈. 또는 바꾼 땅. 환토(換土)
① 작품 개관
김정한의 「어떤 유서」는 1970년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시기의 농촌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작품은 개발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 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힘없는 농민 사이의 갈등을 현실감 있게 보여 준다.
이 작품은 실제 1974년 6월 3일 동아일보 기사를 모티프로 삼아 창작되었다. 중심 사건과 갈등 구조, 결말까지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소설에서는 인물의 심리와 농촌 공동체의 변화, 주민들의 갈등 등을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현실성을 높였다.
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토지 정리 사업인 '환지'이다. 원래 경작하던 좋은 땅을 빼앗기고 가치가 낮은 땅을 받게 된 농민들은 생계를 위협받는다. 그러나 이들의 억울함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권력자와 행정 기관은 개발이라는 명분만을 앞세운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단순히 개인의 불행으로 그리지 않는다. 국가 발전이라는 거대한 목표 뒤에서 희생되는 민중의 삶을 조명하며, 농촌 공동체가 무너지는 과정까지 함께 보여 준다. 또한 젊은 세대가 현실에 적응하거나 개발 논리를 받아들이는 모습과, 이를 비판하는 노인 세대의 시선을 대비하여 세대 갈등까지 드러낸다.
결국 「어떤 유서」는 산업화의 이면에 존재했던 농민들의 아픔을 기록한 작품이며, 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문학으로 남긴 현실 참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② 핵심 정리
- 갈래 : 현대 소설, 현실 참여 소설, 리얼리즘 소설
- 성격 : 사실적 · 비판적 · 사회 고발적
- 제재 : 환지 사업과 농촌 개발
- 주제 :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농촌 현실의 모순과 농민들의 비참한 삶
- 시간적 배경 : 1970년대 산업화와 개발 정책이 활발하게 추진되던 시기
- 공간적 배경 : 개발 대상이 된 농촌 마을
- 사회적 배경 : 국가 주도의 개발 정책으로 인해 농민들이 토지를 잃고 공동체가 해체되는 현실
- 주요 사건
- 환지 과정에서 농민들이 피해를 입음
- 송노인이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해결되지 않음
- 개발로 인해 생활 기반이 무너짐
- 세대 간 가치관 차이가 갈등으로 이어짐
- 공동체가 점차 붕괴됨
- 주요 인물
- 송노인 : 부당한 현실에 맞서는 농민을 대표하는 인물
- 메기임 : 현실을 받아들이며 갈등을 중재하려는 인물
- 상출 : 개발 논리를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
- 작품의 특징
- 1974년 동아일보 기사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성하였다.
-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농촌 현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였다.
-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 권력자들의 토지 침탈과 행정의 부조리를 비판한다.
- 농민들의 삶을 중심으로 민중적 리얼리즘을 구현하였다.
- 개발 정책의 명분보다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 학습 포인트
- 환지는 작품 전체 갈등의 핵심 사건이다.
- 송노인은 개인이 아니라 산업화 시대 농민 전체를 상징한다.
- 세대 갈등은 공동체 붕괴를 보여 주는 장치이다.
- 개발 자체보다 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부조리를 비판하는 작품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